속초관광수산시장을 걷다가 몇 사람이 줄을 선 술빵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속초술빵이 화려해서도, 처음 보는 음식이라서도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다. 오래전 맡았던 냄새가 난다.
커다랗고 둥근 술빵이 김을 품은 채 놓여 있다. 노르스름한 빵 속에는 검은콩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칼을 푹 넣어 한 조각을 가르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른다. 아, 이거 어릴 때 먹던 건데.
어린 시절의 술빵은 간식이 귀하던 때의 꽤 근사한 먹거리였다. 지금처럼 골목마다 카페가 있고, 냉장고 문을 열면 달콤한 것이 기다리던 시절이 아니었다. 엄마가 술빵을 쪄내는 날이면 냄새가 집 안을 채웠다.
막걸리의 시큼한 향과 밀가루가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
솥뚜껑을 열면 허연 김이 얼굴을 덮쳤고, 우리는 뜨겁다고 소리치면서도 손부터 내밀었다.

좀 식거든 먹어
엄마는 내미는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어린애가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빵을 뜯었다. 반듯하게 자를 필요도 없었다. 손으로 툭 떼어내면 폭신한 속살이 결을 따라 벌어졌다. 운 좋게 콩이 많이 박힌 쪽을 차지하면 괜히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 맛이 대단히 달았던 것도 아니다. 크림도 없었고 버터 향이 진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 거칠고, 조금 시큼하고, 오래 씹으면 은근한 단맛이 올라왔다. 참 소박한 빵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반세기도 더 전에 먹던 그 소박한 빵 앞에 지금 사람들이 줄을 선다. 여행객들은 큼지막한 술빵을 받아 들고 사진을 찍고 한입 베어 문다. 누군가에게는 속초에서 만난 별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술빵은 여행지의 음식이 아니다. 한입 먹는 순간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버리는, 조금 위험한 음식이다.

입보다 기억이 먼저 먹는다
따뜻한 술빵 한 조각을 손에 들자 어린 날의 부엌이 떠오른다. 김이 서린 창문, 커다란 찜솥, 막걸리 냄새, 기다리지 못하고 찜솥 곁을 서성이던 어린 나.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조차 희미해진 어머니의 한마디.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라.”
사람은 참 이상한 방식으로 시간을 간직한다. 중요한 날짜는 잊어도 어린 날 부엌에서 맡았던 냄새 하나는 평생 품고 산다. 얼굴은 흐릿해져도 맛은 남고, 집은 사라져도 그 집에서 먹었던 음식은 혀끝 어딘가에 숨어 있다.
생각해 보면 술빵도 시간을 품어야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었다고 금세 빵이 되지 않는다.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려야 한다. 가만히 놓여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움직인다.
기억도 그렇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사라지진 않았다.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 묵고 있다가 어느 날 뜻밖의 냄새 하나를 만나면 슬며시 떠오른다.

속초술빵이 그랬다
속초에는 실향민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북쪽 고향을 떠나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하루 굶지 않는 일이 곧 살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빵을 조금씩 떼어 먹으며 잠시 어린아이가 된다.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내던 아이. 뜨거운 줄 알면서도 큰 입으로 베어 물던 아이. 세상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조금도 모르던 아이.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어린아이는 늙었고, 집은 사라졌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희미해졌다. 그런데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기다리면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속초관광시장 술빵집에서 차례가 된 누군가는 빵을 받아 들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남긴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길을 건너고 여행은 계속된다.
속초술빵 한 조각. 그 안에는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린 날도 들어 있었다. 나는 한 조각을 천천히 씹었다. 입안에는 희미한 단맛이 남고, 시장 너머로 바다에서 불어온 듯한 바람이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날의 냄새와 맛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잊고 살았던 어린 날 하나가 따뜻한 김 속에서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여행 메모 | 속초의 막걸리술빵
속초관광수산시장에는 막걸리로 발효시킨 술빵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그중 ‘강원도막걸리술빵’은 시장의 인기 먹거리로 알려져 있다. 크게 쪄낸 술빵을 잘라 판매하며 은은한 발효 향과 소박한 단맛이 특징이다.
위치 | 속초관광수산시장 내 중앙시장로6길 일대
메뉴 | 막걸리술빵
가격 | 최근 확인 기준 5,000원
이용팁 | 주말이나 여행 성수기에는 대기 줄이 생길 수 있으며, 조기 소진될 수 있음
같이 읽으면 좋은 글
감춰진 작은 항구, 속초 외옹치항
속초바다, 허물 없는 친구처럼
바다향기로, 철조망 옆으로 난 길
가을 비룡폭포 여기까지 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