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으로 가는 길에는 오래된 마을 하나가 있다. 상도문 돌담마을이다.
속초 시내에서 설악산으로 향하다 보면 여러 번 그 앞을 지나게 된다. 목적지가 설악산이라면 마음은 이미 울산바위와 비선대쯤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길에서 잠시 벗어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설악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이어진 돌담 너머로 나지막한 집들이 자리하고, 작은 텃밭에는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자란다. 가을이면 마당 한쪽에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감나무 가지에도 주홍빛 감이 매달린다. 고개를 들면 그 너머로 설악산 자락이 보인다.
상도문은 설악산을 뒤에 두고 앞으로는 쌍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한다. 산과 물 사이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마을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라기보다 천천히 걸어야 하나씩 보이는 곳에 가깝다.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오래된 문
마을 이름인 ‘도문(道門)’에도 설악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효와 의상이 설악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서 맑은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도의 문이 열렸다’는 뜻으로 도문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수행하던 사람들이 지나던 관문이라는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 이야기가 이름의 시작인지 분명하게 가려내기는 어렵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상도문은 오래전부터 설악산으로 향하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등산복을 입은 여행객과 자동차가 설악산을 향해 이곳을 지나지만, 오래전에는 산으로 들어가던 승려와 선비, 장터를 오가던 주민들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담길에 들어서면 평범해 보이던 골목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사람들의 삶
상도문의 돌담은 관광객을 위해 새로 만든 장식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며 집과 밭의 경계를 나누고 골목을 만들면서 이어온 생활의 흔적이다.
돌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크고 반듯한 돌만 골라 쌓은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돌들이 서로 빈틈을 메우며 담을 이루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돌 사이에는 풀이 돋고, 오래된 기와와 담장은 마을의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돌담길은 반듯하게 뻗어 있지도 않다. 담을 따라 걷다 보면 길이 살짝 휘어지고 그 너머에서 또 다른 골목이 나타난다. 빨리 걸으면 금세 지나칠 길인데 천천히 걸으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생긴다.
담장 너머의 텃밭, 처마 아래 놓인 농기구, 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농작물까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여행자에게는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 된다.
돌담의 기왓장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그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제비와 참새, 고양이와 강아지 같은 그림이 곳곳에 숨어 있어 하나를 발견하면 다음 그림을 찾느라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상도문에서는 그렇게 걷는 것이 어울린다.

글 읽는 소리와 농사짓는 노래가 있던 마을
상도문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돌담 너머에 이 마을이 간직한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그중 하나가 상도문 돌담마을의 학무정이다.
학무정은 매곡 오윤환이 1934년에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곳에서 시를 짓고 글을 읽으며 후학을 가르쳤다. 쌍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아홉 곳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이고 노래한 구곡가도 남겼다.
지금은 여행객이 잠시 쉬어가는 정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때 이곳에는 글을 읽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상도문의 문화가 선비의 글과 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농사일을 하며 부르던 ‘속초도문농요’도 전해진다. 농요는 힘든 농사일의 호흡을 맞추고 고단함을 덜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한쪽에서는 선비가 설악산과 쌍천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쳤고, 다른 한쪽 논에서는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함께 노래했다.
글 읽는 소리와 농사짓는 노래가 한 마을 안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보면 상도문의 돌담은 단순히 오래된 돌담이 아니다. 그 안에는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우고 글을 배우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돌로 쌓은 마을의 바람
상도문 돌담마을을 걷다 보면 독특한 돌탑도 만날 수 있다.
‘행주석범(行舟石帆)’이라 불리는 돌탑이다. 마을의 지형을 배에 비유하고, 배가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돛이 필요하다고 여겨 돌로 돛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 돌탑은 큰 수해로 사라지고 지금의 돌탑은 훗날 다시 쌓은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흥미롭다.
오늘날에는 지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만 옛사람들은 산과 물, 마을의 모양을 바라보며 그 안에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돌 하나하나에 담았다.
상도문의 돌은 그렇게 집의 담장이 되기도 하고,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설악산을 조금 다르게 만나는 길
다시 돌담길을 걷는다. 담 너머 감나무에는 감이 붉게 익어가고, 작은 텃밭에는 누군가 정성껏 가꾼 채소가 자란다. 골목 끝에서 고개를 들면 나지막한 지붕 너머로 설악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설악산 안에서 바라보는 산과 상도문에서 바라보는 산은 조금 다르다. 산에 들어가면 거대한 바위와 계곡, 능선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이곳에서는 집과 밭, 오래된 돌담 너머로 산을 바라보게 된다. 거대한 산 아래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시간이 함께 보인다.
누군가는 이 돌담을 쌓았고, 누군가는 논에서 농요를 불렀다. 학무정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가을이면 집집마다 곡식과 과일이 익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하루가 쌓여 상도문의 시간이 되었다.
상도문 돌담마을 길을 빠져나와 다시 설악산으로 향한다.
조금 전까지 마을의 지붕 너머로 보이던 산이 어느새 눈앞으로 가까워져 있다. 문득 수백 년 전 이 길을 지나 설악산으로 향했던 사람들도 같은 산을 바라보았을까 생각한다.
사람은 바뀌고 길의 모습도 달라졌지만 설악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 길목에는 오래된 마을 하나가 남아 있다.
상도문(上道門)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오래된 이름을 마음에 담고 다시 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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