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로 가려면 동해대교를 지나다가 바다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 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고속터미널이 있는 조양동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니까 속초 시내에서 청호동 아바이 마을로 가려면 청초호를 빙 돌아 가야 해서 좀 멀게 생각되었다. 바로 질러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동력선인 갯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속초시립박물관 사진자료]
네모난 상자 같은 갯배
네모난 상자 같은 갯배에 탄 사람들이 갈고리로 배 가운데에 연결해 놓은 쇠줄을 당겨서 건너편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편도 10원을 받다가 20원으로 올려 받았었다.
갯배를 타고 건너면 청초호를 빙돌아서 건너지 않아도 되고 좀 기다리는 시간이 있긴 해도 거리가 100미터 정도라서 일단 타고 나면 금방 건너편에 닿을 수 있었다.

[속초시립박물관 사진자료]
제일 붐비는 시간은 출근과 통학시간인 7~8시 경이었는데, 가끔은 갯배에서 웃음짓게 하는 헤프닝이 일어나곤 했다.
늦잠자다 시간을 못맞춘 학생들이 막 떠난 갯배를 타려고 선착장 끝에서 펄쩍 뛰었다가 배에 닿지 못해 바다로 빠져서 물에 흠뻑 젖은 걸 끌어 올려주는 일도 있었다.
비바람이 많이 불 때는 가림막이 없는 갯배에서 썼던 우산이 날아가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는 갯배를 끌어주는 쇠줄이 끊겨서 둥둥 바다로 떠내려가서 급하게 동력선이 와서 구해주는 일도 있었다.
청호동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갯배는 단순히 청호동 아바이마을로 빨리 가는 수단이 아니었다. 갯배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게이트와 같았다.
원래 청호동 아바이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던 백사장에 소나무만 몇 그루 있던 긴 해변 모래톱이었다.
속초 청호동 아바이 마을
월남한 실향민들이 다시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잠시 머물 장소로 선택한 곳이다. 휴전이 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버려야 했던 아바이들에게 여기 속초에서 삶을 이어가는 밧줄이기도 했다.
북한의 해변 지역인 함경도에서 동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많아서 갯배를 타는 길목에서는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이 같고 형편도 비슷하고 살았던 동네도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아서 그런가 청호동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형제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속초 원주민들과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자리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예민하기도 하고 좀 거칠기도 했다.
아바이 마을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자주 갯배를 타고 건너 갔었다. 지금도 먼저 떠오르는 건 갯배에서 내려서 골목에 들어서면 튀긴 강냉이 고소한 냄새이다.
골목 초입부분에 강냉이 뻥 튀겨주는 집이 있어서 그 냄새가 먼저 다가왔었다. 그리고 마당이 없이 옆집과 앞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은 판잣집이 기억난다.
며칠 전에 가보니까 예전하고 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한 집들이 여전히 있었다. 이젠 함경도 사투리로 ‘이봅세!’ 안부를 묻던 아바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함경도 지명을 붙인 단천식당 그리고 함경도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 보였다.

지금은 번지수가 없던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속초시 행정구역에 들어와 있다. 더는 실향민이 아니다. 남들보다 독해야 살 수 있었던 아바이들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곳에 닿았을까? 지금도 갯배는 쇠줄을 부여잡고 건너오고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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