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오징어 난전, 입안에는 아직, 어린 날의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가 묻어 있었다. 동명항 오징어 난전 천막 아래 사람들이 낮은 의자에 둘러앉아 있었고, 수조에서는 오징어가 투명한 몸을 뒤척였다. 주문이 들어가자 수조에서 건져 올린 오징어가 가늘게 썰려 금세 접시에 올랐다.
오징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쫄깃한 살을 씹자 은근한 단맛 뒤로 짭조름한 바다 맛이 따라왔다. 그 맛을 따라 오래전 한 장면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영랑동 해변에는 고랑대를 박고 줄을 걸어 오징어를 말리던 덕장이 있었다. 줄마다 오징어가 빼곡하게 매달렸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주인 눈치를 살폈다. 햇볕과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오징어 앞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어느 날,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 덕장 가운데로 숨어 들어갔다.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갈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다리나 뜯을 수도 없었다. 양쪽 끝의 긴 다리는 오징어를 스무 마리씩 묶을 때 쓰였기 때문이다. 긴 다리를 피해 가운데 다리를 뜯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결국 눈에 덜 띌 만한 다리를 골라, 한 마리에서 하나씩 두세 개를 뜯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남의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덕장을 빠져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서는 줄에 매달린 수백개의 오징어 눈이 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다리는 질겼다. 빨리 삼켜야 하는데 질긴 다리는 좀처럼 입안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씹으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혹시 주인이 뒤에서 부르지는 않을까. 널어놓은 오징어를 살피다가 다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지는 않을까.
그런데도 맛있었다. 오래 씹을수록 짠맛 뒤에서 단맛이 배어 나왔다. 그래서 다음에 덕장 앞을 지나면 또 오징어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먹고 싶은 마음과 들킬까 두려운 마음이 따라왔다. 그날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인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남의 눈이 사라진 뒤에도 나를 바라보는 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속초 오징어 난전에 앉아 오징어회를 앞에 두고 그 아이를 생각했다.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징어를 주문한다. 다리 하나가 아니라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되고, 부족하면 한 접시를 더 시켜도 된다. 그런데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지금의 오징어보다 몰래 뜯어 먹었던 그때의 다리 하나가 더 선명하다.

그 오징어 다리에는 짠맛과 단맛 말고도 두근거림이 배어 있었다. 한입 먹었을 뿐인데 수십 년 전 바닷가에 다시 서 있었다. 수조에서 오징어 한 마리가 몸을 뒤집었다. 투명하던 몸에 잠깐 색이 번졌다가 이내 옅어졌다. 물속의 오징어가 둥근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눈을 바라보았다. 덕장 사이를 서성이던 아이가 수십 년을 건너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듯했다.
밤이 깊어졌다. 난전의 불빛이 바닷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사람들 웃음소리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접시에는 오징어 다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파도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입안에는 아직, 어린 날의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속초 오징어 난전 기본정보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금강대교로 228 (수복탑 교차로 인근)
운영 기간: 매년 5월 중순 ~ 12월 말 (12월에는 도루묵, 양미리 구이 판매)
영업 시간: 보통 오전 6시~7시 시작 ~ 오징어 소진 시 조기 마감
주차: 난전 앞 또는 인근 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 속초시청 공영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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