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설악산은 외면할 수 없는 풍경이다.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듯하다. 감춘 속을 드러내는 이 계절은, 흰머리가 늘어가는 내 모습과 닮았다.

케이블카 건물을 지나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일상의 소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비룡폭포까지는 약 2km. 길지 않은 거리지만, 흔들리는 나뭇잎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사이로 놓인 돌계단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숨이 찰 때마다 멈춰서서, 얼마나 올라왔는지 되돌아보았다. 이 길은 단순한 산길이 아니었다. 등산배낭 속에 지난날의 기억을 지고, 폭포를향해 오르는 길이었다. 발걸음마다 잊고 있던 일들이 삽화처럼 떠올랐다.
넘어진 무릎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침묵하고, 진실 앞에서 주춤거리기도 했다.

한때는 세상을 만만히 보고,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열정으로 살았다. 길을 잃고, 실패 앞에서 방황하는 날도 있었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셀 수 없는 이야기를 품은 채 세월은 흘러갔다.
가을 비룡폭포 돌계단 같이
시간은 손에 쥔 것들을 하나둘씩 데려갔다. 어떤 것은 내 의지로 놓았고, 어떤 것은 빼앗겼고, 어떤 것은 알아서 떠나갔다. 그 수 많은 날이 쌓여 비룡폭포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자리는 점점 뒤쪽으로 물러나 있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도 이제는 주위를 살피게 된다.
아직은 아니라고 부정해 보지만, 공허하게 다시 내게 돌아온다. 남은 것은 무거운 걸 들기 버거운 팔, 달리기보다 걷기가 편한 다리 그리고 흰머리와 감출 수 없는 주름뿐이다.
내 안의 소란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도착한 비룡폭포는, 내 안의 소란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오랜 회한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 가만히 서 있었다. 벅찬 감정과 알 수 없는 안도가 가슴을 채웠다. 폭포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거침없이 쏟아질 뿐이었다. 아무 말 없어도 그걸로 충분했다.

산 아래 일상이 다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지름길은 없고, 여전히 한 걸음씩 걸어 내려와야 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무거운 짐을 폭포에 내려놓고 온 듯했다.
이제 남은 날들은 물처럼 흘러가겠지만, 나는 내가 정한 속도로 살아갈 것이다. 비룡폭포에서 돌아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잘 왔다.”
정보
이름: 폭포수의 시끄러운 소리가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용과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비룡폭포라고 지어졌다
위치: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국립공원
비룡폭포 코스: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 비룡폭포 (왕복 약 4km / 소요시간 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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