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범바위
강원도 속초에는 바다와 호수가 나란히 숨 쉬는 풍경이 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영랑호는 바다와 육지가 빚어낸 석호로, 사계절마다 다른 빛과 색으로 시민과 여행객을 맞이한다.

수면은 잔잔하고, 둘레길은 고요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의 속도도 자연스레 느려진다.
영랑호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친 신라의 화랑 ‘영랑’이 이곳의 빼어난 풍경에 반해 머물렀다는 전설이다. 그의 이름을 딴 이 호수는 지금도 변함없이, 시간의 결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호숫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 개의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거대한 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바위는 오래전부터 ‘범바위’라 불렸다.
처음에는 영랑호 범바위-그 이름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호숫가에 자리한 작은 산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바위였기 때문이다.
범의 모습을 닮아 보이지 않은데, 왜 ‘범바위’라 불렀을까
범의 모습을 닮아 보이지 않은데, 왜 ‘범바위’라 불렀을까. 보통 이름은 지형과 전설, 사라진 이야기, 여럿의 눈과 기억이 겹쳐 만들어진다. 그러나 범바위를 설명하는 표지판에는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전해오는 범바위 설화에는 덫에 걸린 범을 구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아내가 병들자, 은혜를 갚고자 범은 병을 고칠 약초를 구해 준다.
고마운 마음에 그는 범에게 날마다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누군가가 배에 구멍을 뚫어 놓았고, 그는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매일 그를 기다리던 범은 끝내 슬픔 속에 머물다 죽었고, 그 몸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이야기다.
대개 유명한 곳에는 이런 설화가 한두 편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잘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를 가로지르는 부교 위에 잠시 멈춰 섰다. 물 건너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위를 바라보는 순간, 흩어져 있던 선들이 하나의 형상으로 이어졌다.

위로 둥글게 솟은 부분은 귀처럼 보였고, 길게 뻗은 암반은 주둥이와 이마선을 이루고 있었다. 완만하게 이어진 곡선은 단단히 다문 입매처럼 느껴졌다.
푸른 하늘과 겹겹의 산을 배경으로, 그 바위는 마치 숲 위에 몸을 낮춘 채 앞을 응시하는 호랑이의 옆모습 같았다. 당장이라도 숨을 고르며 움직일 듯한 긴장감이 그 안에 스며 있었다.
한 번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 또렷한 형상이 자리 잡았다. 그동안 여러 번 이 길을 걸었지만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너무 가까이에서 바위의 크기와 질감만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물러서 전체를 바라보는 순간, 숨어 있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마도 오래전 이곳 사람들도 비슷한 자리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범바위’라 이름 붙였을 것이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본 시선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영랑호 범바위
그날 이후로 영랑호를 걸을 때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범바위 앞을 지날 때면 오늘은 또 어떤 표정으로 보일지 기대하게 된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구름 그림자에 따라 호랑이의 얼굴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이미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어쩌면 삶도 그렇지 않을까.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미 다 안다고 여기며 지나쳐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 바라보면, 같은 자리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새롭게 본다는 것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거기에 있던 것을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해 질 무렵, 다시 부교 위에 선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때, 호랑이의 형상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그 모습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영랑호를 걷고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춰 보길 권한다. 그리고 몸을 낮춘 채 호수를 바라보는 범을 찾아보자. 당신의 눈에도 범이 보이는가.
같이 읽으면 좋은 글
감춰진 작은 항구, 속초 외옹치항
속초바다, 허물 없는 친구처럼
바다향기로, 철조망 옆으로 난 길
가을 비룡폭포 여기까지 잘왔다
